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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 다윈 리 운영자 2019-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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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ank God for praying children”

기도하는 아이들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After a life of self-reliance, it took the persistence of his children before Darwin could look to God and admit, “I need help.” By Darwin Lee

자기자신만 신뢰하고 살았으나 아이들의 끈질긴 요구가 다윈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인정하게 하였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 다윈 리

Darwin Lee는 1926 년 6 월 17 일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Roger와 Ida Lee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6 세 때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그는 포틀랜드 지역과 로즈버그의 쿠알리 레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나이 많은 형과 누나가 근처에 살았고 가끔 잔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다윈과 동생은 거의 스스로 자립하였다.

2차 세계 대전 때 다윈은 군에 입대하였지만 류마티스성 열병에 걸려 8개월 동안 해군 병원에 있었다. 그때 의사들은 그에게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일을 하라고 하였으며 아이를 갖지 말라고 하였다. 또한 그의 병 때문에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계획을 갖고 계셨다. 다윈은 1947년 8월30일 맥신 렌즈와 결혼하여 세 딸과 네 아들을 낳았다. 나중에 그들은 슬하에 23명의 손자들과 39명의 증손자, 6명의 고손자를 보게 되어 다복하였다.

다윈은 윰콰 우유회사에서 40년 넘게 일했는데 매일 온종일 우유트럭에 박스와 상자를 싣고 내리며 타고 다녔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했다. 1988년 은퇴 후에는 로즈버그의 쿠알리 레인에 있는 그의 15에이커 (18360평) 의 농장에서 죽기 몇 달 전까지도 잔디 깍는 일 조차 스스로 하며 노년을 보냈다. 많은 가족 행사가 거기에서 다윈, 맥신 부부와 함께 열렸다. 그가 죽는 날까지 그의 가족들은 자주 그를 찾고 사랑하였다.
1975년에 다윈은 거듭났고 44년간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믿음의 큰 본을 보여 주었고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는 2019년 1월 30일 영원한 상을 받기 위해 본향으로 갔다. 아래는 그의 간증이다.


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다. 내가 여섯 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너무나 외로웠다. 그리고 혼자 힘으로 살았다. 아버지는 무신론자였고 우리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는 것은 기독교인들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단지 다른 사람들의 관대함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었다.

맥신과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때때로 아내는 주일 학교에 나가기를 원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그것에 반대했다. 나는 아이들이 나중에 종교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으며 열심히 일했고 가족을 잘 돌보았는데 종교적인 사람들은 약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냉담한 성격과 더러운 입을 갖고 있었다.

아내가 교회에 갔을 때 나는 어떤 도움도 격려도 주지 않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집에서 일하는 날이었다. 딸 아이들이 열 살쯤 되었을 때 나는 딸들을 주일 학교에 가는 것은 나약한 짓이야 하고 놀리곤 하였다. 나는 아들들에게 “주일 학교에 가고 싶으면 가라, 그러나 집에서 나와 함께 일하고 무언가 성취 하는 것이 나을 거야” 하고 말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 중 몇몆은 구원 받았고 사도신앙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이나 조부모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들이 기도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 때에 내 인생은 불쌍하였다. 내 나이 거의 50살이 되었다. 아내와 결혼한지 25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다지 대화가 없었다. 내 아이들이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볼 것을 확신하니 나는 희망이 없음을 느꼈다. 아이들이 내게 교회 가자고 계속 졸랐지만 새벽 두 시 반에 일하러 가야 해서 일찍 자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아이들의 계속되는 요구에 나는 결국 교회 나가기로 하였다.

그 때 내 아들 중 하나가 “아빠, 교회에 오셔서요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그저 조용히 듣고 계세요.” 그것은 적절한 요청이었다. 내가 목사님을 알고 보니 목사님은 자신이 말한 것을 진실로 믿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배 후에 목사님이 나에게 와서 말씀 하셨다. 그는 상냥하였고 돈을 요구하겠지 하고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어떤 돈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의 끈질긴 요구 때문에 나는 계속 교회에 나갔다. 나는 여전히 용기가 없었고 아마 많은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우둔한 것 같았다. 아들이 “아빠, 계속 교회 나가시고 들으세요. 여섯 달 안에 명백하게 아실 거예요” 하고 말했다. 나는 여섯 달 안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 말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하여 교회에 나갔고 내가 들었던 것이 조금씩 내게 생각을 주기 시작하였다. 점차 나는 좀 더 받아들였으며 드디어 기도대에 나가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 삼월, 우리는 포틀랜드 본부 교회 특별집회에 갔다. 토요일 밤 그들은 “밤의 도둑” 이라는 주님의 오심에 관한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 아주 큰 감명이었고 장막 교회의 자리 중 하나에서 기도를 했다. 나의 처음 말은 “하나님, 나는 도움이 필요해요” 였다. 나는 그때나 지금까지 도움을 받고 있다. 주님께서 오셔서 나를 구원 해 주셨고 나는 무엇인가 진실한 것이 내 인생에 일어났음을 알았다.

집에서 많은 것들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구원 받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혼 생활에 사랑과 따뜻함으로 다시 채워 주셨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께 의지 하도록 가르치셨다. 기도하는 것과 우리의 짐들을 주님께 맡기는 것은 굉장한 특권이다. 하나님께서는 낮이나 밤이나 어느 때에든지 함께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인생은 과거의 어는 때 보다도 좋다. 아내와 결혼한지 70년이 되었다.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감격한다. 뒤돌아 보면, 내 의무는 아이들을 훈육하고 일하도록 가르치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지금 나는 그들과 함께 함에 있어 인내와 사랑이 부족했던 것을 알았다. 비록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많은 방법들을 통하여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을 느낀다 ― 그들에게 내가 돌본다는 것을 보여주고 손자들과 증손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들이 주님을 섬기는 것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다.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한다면, 무엇을 했던지 어떻게 살았든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한 없이 기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구원 하실 것이고 그의 인생을 바꾸실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Darwin Lee 는 1975년에 구원 받았고 2019년 1월 30일 죽을 때까지 오레곤 주 로즈버그의 사도신앙교회에 출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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