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와 타락 | 운영자 | 2019-04-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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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와 타락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먹은 마약 때문에 나는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고 현실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터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영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내가
머물고 있었던 차고 안의 낡고 부서진 침상 위에 쓰러지던 그날 밤, 난 처음으로 오랫동안 하나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일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는 "오! 하나님, 날 살려주세요!"라는 외침이 있었습니다. 마약 사용으로 나의 삶은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어떠한
충동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악습 때문에 많은 돈을 소비하고 있었습니다. 마약 밀매가 나의 주요 소득원이었는데 어떤 때는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런 일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 인생은 악몽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어린아이에게 선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면 바로 내가 그런 아이였습니다. 기독교 가정에 태어난 나에게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니고 교회
행사에도 참석했던 추억들이 있습니다. 나의 할아버지는 목사였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내가 보기에도 온전한
기독교 생활을 지키셨습니다. 나의 부모님들은 교회에서 배운 그대로 집에서 생활해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예수 안에서 참 평안과 만족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경이 참된 책이라고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내게 말씀하셨으며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했는지, 어린 시절이 기억이 납니다. 어떤 꺼림칙한 행동을
하면 얼마 동안은 죄송하게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그 행동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악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몰래 하는 짓이기에 즐겨 행했습니다. 그
짓이란 거짓말과 욕하는 것, 그 밖의 추한 일들이었습니다. 6학년이
되자 마약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나는 또래 중에서
제일 먼저 마약을 복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영웅이 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기독교인 행세를 했습니다. 교회 행사에도 참석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웃과 학교에서는 거친 아이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가식적인 생활이란 너무나도 비참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마약을 복용했습니다. 나의 모든 존재가 거짓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내가 한 거짓말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이 두렵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미웠습니다. 졸업 후 나는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이라 일이 뜻대로 잘 돼가는듯했습니다. 멋진 차와 빠른
오토바이, 충분한 양의 마약과 많은 친구들이 내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랐던 교회의 성도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역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2년이 안되어 상황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약으로 인해 심한
신경쇠약에 걸려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내 자동차의 엔진이 폭발하였고 오토바이는 도둑을 맞았습니다. 거리에서 지내는 신세가 되었고 친구네 집, 숲속, 차고, 지붕 위에서 닥치는 대로 잠을 잤습니다. 나는 현실과 나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망치면 도망칠수록 나의 생활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내가 손을
대는 것마다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침내 영원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느낌을 느끼고 하나님께
생각을 돌렸던 그 날밤이 왔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주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몇 주 후 나는 다시 강한
약을 사 먹었습니다.잠시 후 나는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내 팔을 붙잡고 날 진정시키려고 애썼습니다. 혼미한
상태에서 나는 그가 나와 싸우려는 줄 알고 그를 무자비하게 때렸습니다. 그는 간신히 피해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나는 상처를 입었고 몸이 쑤시고 아팠습니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올 궁리를 했습니다. 그때 나는 지난주 아버지가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오셨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캘리포니아 우드 레이크 교회에서 열리는
부흥집회에 초대하기 위해 오셨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싫어요. 날 혼자 내버려 두란말이에요"라고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그곳에 가기로 했습니다.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집회에 가시고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조금 있다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우드 레이크에 도착하였는데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내 굳은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내 귀에 달려있는 안전핀과 상처 난 얼굴, 그리고 터부룩한 수염을 보지 못했는 듯했습니다. 다만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어릴 때 느꼈던 그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것을 목격한 것이었습니다. 한 청년이 나를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초대하였습니다. 그의 집에서 하나님은 나를 설득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귀에 익은 찬송가 몇 곡이 은은히 연주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나는
그 청년의 안락한 가정의 모습, 그의 기독교 신자인 아내, 그
자녀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진정 그토록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나 자신의 삶의 모습과 비교해 보았습니다. 나는 불과 19살 때 타락했던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내 인생에 남은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 청년에게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 청년에게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우리는 침상에 무릎을 꿇었고 나는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내 모든 삶이 그 짧은 기도로 포장됐습니다. 하나님도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피터 잰슨은 캘리포니아 사도의 신앙 교회의 목사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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