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을 이루시는
나의 하나님!
(김성자 자매의 간증)
어릴 때 나의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내 마음은 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갈급함이 생겼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의 소망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넌 이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난 항상 "목사님이 될래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부산에 있는 사도의 신앙 교회로부터 "소망의 빛"이라는 전도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지를 읽고 난 후 '이것이 진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수년간 부산 사도의 신앙 교회와
편지 왕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그 교회로부터 보내오는 전도지들이 너무나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그 전도지들을 내 고향과 대구지역에 가서 전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1975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용산에 바렛트 선교사가 그의 아파트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간 난 그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1976년에 부산교회 한 장로님으로부터 그 사실을 듣게 되어 그 다락방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인이 10명 정도였는데 난 그곳에서 내가 바라던 진리의 말씀 -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짓지 않는다" -을 들었습니다. 난 이미 그 말씀을 전하시는 선교사님이 의로운 생활을 하시는 것을 보아왔었습니다. 반면 나는 마음속에 교만과 거짓이 가득 찬외식 짜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기가 쉽지 아니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의 거룩한 생활과 성도들의 간증은 내 양심을 찔렀고
난 구원 받기를 갈급해 하였습니다. 내 마음은 한 달 동안 심히 고통스러웠습니다. 먹을 수도 없었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1976년 5월 16일 설교를 듣고 나의 죄에 대해 너무나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난 정말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기도 시간에
성도들이 모두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난 정직하게 내 모든 죄를 뉘우쳤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보혈로 모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난 거듭났던 것이었습니다. 나의 생활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을 무척이나 사랑했었지만
구원받고 나서는 세상의 것들에 대해 전연 관심이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예수님만이 소중한 분이셨습니다. 내 마음속에는 평화와 기쁨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은 "구원받고 나면 핍박과 시험이 오기 때문에 반드시 성경읽기와 기도에 힘쓰라"라고말씀 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내게 물질적인 시험이 왔습니다. 대구에 직장을 얻게
되어 일을 하게 되었는데 품삯이 괜찮았고 직장동료들로부터 평판도 좋았습니다. 물론 나는 승리 생활을
하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점점 식어갔습니다. 내 마음도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나는 '이 말씀을 순종하면 살고 그렇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서울에
있는 그 교회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예배실에 들어가서 성도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모습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습니다. 기도 시간에 나는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했었는지!
대구에 있는 집으로 가던 어느 날 고속버스 안에서 나는
성결에 대해 갈급하여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를 성결케 해 주셨습니다. 또 언젠가 배상에
대한 전도지를 읽었는데 하나님께서 내게 모든 잘못을 배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대구로 내려간지
일주일 후 부산에서 특별집회가 열렸는데 나는 그 집회에 매우 참석하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내 부산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감사함으로 나의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드렸을 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난
방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후 다시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 살게 되었는데 직장으로부터
교회까지 1시간 30분 거리였지만 나는 매 집회마다 즐거이
참석하였습니다. 얼마 후 한 기독청년을 만나 결혼하여 믿음의 복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우리의 결혼생활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병들었을 때 기도하면 그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는 약국이나 병원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위급한
상태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살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아이를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온전케 해 주셨고 지금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1985년에 우리 식구를 대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나의 기도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대구에는 나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대구에도 우리 교회가 세워지기를 원했었습니다. 대구에서 목회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1986년 첫째 아들이 7살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도사였던 나의 남편은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부활주일 아침 예배 때 나의 어머니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열심 있는 집사이셨는데 물질적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불교로 개종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랫동안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해오던 중 대구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우리도 대구로 오게 됨으로 적극적으로 어머니를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몹시 아프시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그 부활주일 아침 성도들의 부축을 받아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고 통곡하며 회개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성결의 은혜를 받았는데 남편의 구원을 위해 갈급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의 광대뼈 근처에 큰 혹이 생겼는데 통증이 심하고 심한 냄새가 났습니다. 의사의 진찰을 받아보니
암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서 수술을 받아도 가망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곧 사망선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어느 화요일 집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기도하다가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방언 소리에 잠에서 깬 아버지께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다음 주일 교회에 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본 성도들은
놀라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빛난 얼굴에다 혹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987년 금요일 밤 첫째 아들이 성결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1988년 두 조카와 한 조카딸이 교회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는데 조카딸이 구원과 성결과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얼마 후 그의 어머니도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녀의 생활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녕 그의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보상해 주신다는 사실을 내게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많은 선한 일들을 행해 주셨습니다. 난 그의 말씀 안에
계속 거할 것입니다. 나와 내 가정을 위해 많은 일들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내 어릴 때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 주님께 진정 감사드립니다.
(김성자 자매는 대구에 있는 사도의 신앙 교회의 목사 사모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