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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낸 여로 운영자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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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겨낸 여로

 

(딸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선 우리 부부에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겨버려야만 한다는 것임"을 보여주셨다.)
샐리 바렛 토의 간증

그토록 즐겁게 시작됐던 해변 휴가였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괴롭기만 했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딸 패미가 없어진 상태로 귀가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패미가 익사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해변 휴가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딸 개미는 며칠 전에 끝난 캠프 집회 때, 주께 그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 역시 딸과 더불어 주님을 섬기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동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때 막 깨달아 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딸 패미와 나는 패미가 주께 마음을 드린 그때로부터 새로운 친밀감과 일치감을 서로 맛보았습니다. 이러한 몇 주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개미는 참으로 내게 소중한 외동딸이었습니다. 나는 늘 딸을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아이는 가고 없었습니다.

비극이 일어난 것은 8월의 해변 휴가가 끝나가는 어느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우리 부부는 모래사장에 일광욕을 즐기며 쉬고 있었고 큰 아들 랍은 열 살 난 리치와 함께 패미와물속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가끔 물 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면 그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면서 얕은 물가에서 뛰어다니면서 모래사장 위로 밀려오는 파도를 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남편과 나는 화들짝 놀랬습니다. 리치가 달려와서 흐느끼면서 "랍과 패미가 물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어요"라고 소릴 질러댔기 때문입니다. 비수로 심장을 찌르는 것 같은 그때의 그 두려움을 난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도 뜻밖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다음 순간들을 내가 지워 버릴 수 있었던 건 순전히 하나님 덕분이었습니다. 구명대원들이 현장으로 나간 잠시 후 딸 패미가 해변으로 끌려 나왔습니다. 구명대원들이 딸을 모래사장에 눕혀 놓고 인공호흡을 시키고 있을 때, 난 마음으로 주께 울부짖었습니다. "주여, 주께선 제 마음의 소원을 아시나이다." 나는 패미가 다시 살아서 회복되길 바랐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도 난 그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호기심에 모여들었습니다. 그중 한 아이가 내 딸이 세례를 받았는지 물었습니다. 이 질문이 참으로 부질없다 싶어서 둘러선 아이들 모두에게 내 딸이 확실히 구원받은 사실을 외쳐대고 싶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우리 큰 아들은 기진맥진한 채로 물에서 끌려 나왔습니다. 그 아이에게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자기 여동생을 구하려다가 모래와 물을 많이 마셨던 것입니다. 구급차가 불리고, 랍과 개미는 가까운 병원으로 급송됐습니다. 나도 함께 타고 갔습니다. 가면서 딸의 몸에 손을 대보고는 그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는 걸 알게 된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다.
패미를 잃고 포틀랜드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지금까지 내 생애에서 가장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잇달아 기억이 되살아 났습니다. 그 아이는 그때 한 달만 지나면 16살이 되는 셈으로 구원받지 못한 십 대 소녀들이 갖는 고통 거리와 문제들을 그 역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몇 주 동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기라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소식을 듣고서 포틀랜드로부터 왔다가 함께 귀가하는 중에 내게 결코 잊지 못할 말을 해주었습니다. "엄마, 우리는 보혜사 성령의 세례를 받았잖아요. 그러니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성령께서 역사 심을 보는 것이에요." 이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선 우리를 도와주셨으며 우리가 당하는 바 모든 슬픔 가운데서도 우리 마음속에 놀라운 평안을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생각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내 딸이 하나님께 갈 준비가 되었었다는 사실만이 감사했습니다. 그 아이가 이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았으며 언젠가는 우리 가족이 그 아이와 함께 만나게 되기라는 걸 생각하고선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우리 가족은 텅 빈 딸 방에서 오랫동안 그 아이가 모아 놓았던 물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루하루 지나 어느덧 개학날이 되었습니다. 전엔 딸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출입문 쪽에서 들리는 딸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 발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간 과거가 생생하게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니까 딸이 죽기 9년 전 이미 하나님께선 우리 부부의 마음과 생활을 변화시켜 주시고 평안함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감수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나의 시모님은 참하나님의 성도로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때까지 그분은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모여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고집 센 자기들의 자녀들이 구원받기를 기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주께선 우리 가정에 비극이 될뻔한 사건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여름 캠프 집회가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난 그때 가지 많은 친족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 간의 우애를 다지는 모임을 갖곤 했습니다. 그때도 우린 서로 방문하여 가족들의 소식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풍을 갈려고 할 때, 한 살배기 리치가 우리 집 뒷마당 기찻길로 기어갔습니다. 갑자기 가차가 급정거하는 굉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멈췄을 때 우리는 그 아이가 없어진 걸 알았습니다. 이 순간의 가슴 저리던 그 고통을 어떻게 다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달려갔을 때 사색이 된 차장이 아이가 철로 위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리치는 하나도 안 다친 채로 철로가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상으론 아이를 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차장은 아이가 무사한 걸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선 내 마음속에 무언가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주님께 "왜 제게 이렇게 대하십니까?"라고 따지며 심지어는 "주께선 제가 저 구식 교회에 다니기를 바라십니까?"라고까지 대들었습니다. 나는 결혼생활을 해 오면서 언제나 이 교회를 경멸해 왔는데 이는 이 교회의 까다로운 교리 기준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시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나가 그 전하는 말씀대로 믿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요구하시던 바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진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당시의 나의 감정은 혼돈 상태였던 것입니다.

몇 주 뒤 우리 가정엔 또 다른 슬픔이 닥쳐왔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며 또 날 위하여 기도해 주시던 시모님께서 세상을 떠나 소천하신 것입니다. 9년 뒤 패미를 잃은 때처럼 우리에겐 위로받을 데가 없었고 의지할 강한 팔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남편은 그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을 받게 됐습니다.

어느 날 밤 남편은 함께 교회 가자시는 그 아버지를 존경하는 뜻에서 교회에 가게 됐습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 얼굴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대형 소파에 앉아 있는 내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 구원받았소"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빰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난 한 번도 구원의 체험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내심 알 수가 있었습니다. 가까운 이웃 교회에 나가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까지 하며 선한 생활을 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도 했으나 그날 밤 남편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그 얼굴에 나타난 그러한 평화는 내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난 고집적인 태도로 남편에게 쏘았우쳤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가세요. 전 제 길을 가겠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선 나를 그대로 버려두시질 않았습니다. 내 마음이 남을 비꼬길 좋아하고 자만에 차 있으며 그러고도 나 자신만은 지극히 선하다고 여기며, 또 사도 신앙 교회와 이 교회 성도들에 대해 비판하는 마음이 있음을 하나님께선 보여주시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며칠 후 남편이 저녁예배에 다시 가고 없는 동안 아직 황혼 녘에 나는 죽은 장미를 전지하려고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축 늘어져 있는 장미꽃과 죽은 가지와 잎을 전지하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전지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주님, 더 이상 이런 식의 생활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생활을 잘라주십시오. 주께서 남편처럼 저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 주신다면 이런 생활은 청산하겠습니다."라고 나는 주께 말하고 있었습니다. 장미 정원에서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주일 후 나는 나의 생명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릴 준비된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주께서 나의 참 모습을 보여주셨을 때 주님 앞에 나의 의는 헌 누더기와 같음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내 마음속에 남을 비판하는 마음이 있음과 이것이 얼마나 가증한 죄인가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할 수 있으실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이런 나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날 밤 내가 회개하며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선 내 맘속에도 그 놀라운 평화와 가쁨을 주셨던 것입니다. 동시에 죄책감도 사라지고 또 내가 이제껏 애지중지했던 것들에 대한 애착심도 말끔히 사라져버렸던 것입니다. 대신 내 마음과 생활은 전에 한 번도 누린 적이 없던 보다 깊고 더욱 즐거운 것들로 충만케 됐습니다.

이때로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하나님께선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곧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여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의 방법은 우리가 비극을 당했을 때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심으로 아름다운 집을 갖게 됐고 가족들은 다 행복하며 남편의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딸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실은 인간의 모든 계획과 욕망은 일순간에 다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소중히 여기던 것들은 허망하게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며, 그러므로 진실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겨버려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패미가 죽은 이후 여러 달 동안 포틀랜드 항구에서 선교의 기회를 갖게 되어 우리 부부는 감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인 선원들을 만나 이들을 교회로 초대해 와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소망을 말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한국인 학생 하나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까지 했습니다.
딸이 죽은 지 6년 뒤 우리 부부는 처음으로 한국에 선교여행을 하게 됐습니다. 한국인 선원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우린 한국에서의 선교의 문이 대단히 많이 열려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 부부는 집을 팔고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서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어언 15년이 흘렀습니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 집과 또 친구들을 떠나 지금까지 이 한국 땅에 사는 동안 내 영혼 속에 울려퍼지는 한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패미가 죽었을 때도 떠올랐던 노래이기도 하였습니다. 딸을 주님께 떠나보낸 그 날 밤 침대곁에서 무릎 끓고 있을 때 이 노래의 가사가 내 영혼 속에서부터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딸이 죽은 그 날 밤 이 찬송가사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것이었는데 이제도 그러합니다. 그 찬송을 영어로 부르던 혹은 우리와 함께 수고하는 한국성도들의 말로 부르던 말입니다. 그 날 밤부터 이 날까지 기쁨과 축복의 때뿐만 아니라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과 아픔의 때에도 도리어 이것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나의 주가 되신다는 줄기찬 생각이 나의 삶의 샘이 되어왔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샐리바렛트여사는 선교사 부인으로 한국에서 30년 가까이 선교하다가 1992 8 27일에 주님의 부르심 받아 소천하였음. 한국 선원들을 집으로 초대해 와 맛있는 호박파이를 만들어 대접하였다고 해서 한국일보에 "호박 할머니"라는 기사까지 난 적이 있었다. 그는 영적으로 훌륭한 하나님의 동역자일 뿐 아니라 미스 장이라는 미인대회에서 뽑힐 정도로 미모도 아름다운 분이셨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성도로서 선교사로서 또한 한 여인으로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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