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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으로 부름받은 전 세계총감독 운영자 2019-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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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으로 부름받은 전 세계총감독

 

카버 목사님에 대한 회고록

2년 전오리건주포틀랜드에서 매년 열리는 캠프 집회에서 로이스 카버 목사는회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나는 앞서간 성도들과 지금까지 나와 함께 일해온 여러분이 내게 주신 믿음과 신뢰에 보답하고자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책임감은 줄기는커녕 커져왔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교역자들과 일꾼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승리를 맛보아 왔습니다.

1996 3 10일 사도의 신앙 교회의 감독권을 드와이트 볼첼목사에게 이양하는 그 역사적인 날에 그가 말한 승리는 최후의 승리로서 절정을 이룬 것이었다. 그는 이 땅의 모든 여정을 마치고 그의 구세주가 계신 곳으로 옮겼던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었던 그는 감독이나 지도자라기 보다 그 이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28년간 기도로써 교단을 이끌어 나가면서 전 세계 성도들에게 한 집안 식구와 같은 느낌을 주었던 형제요, 친구였다.

로이스 카버 목사는 1918년 테네시주 대 카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종종 간증을 할 때 자기는 평생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말했다. 어릴 때 그는 테네시 주에 있는 한 조그만 교회에 다녔었는데 18살이 되었을 때 온전한 영적 욕구의 필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그는 어느 전도자의 초대를 받아 옥외 부흥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나를 앞자리에 앉히더니 목사님이 와서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 나는 성경을 믿으며 나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나는 죄인임을 고백하였고 거듭나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주를 믿는다고 말하자 그들은 내가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자기는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을 정말 받았다면 변화된 생활을 해야 하는데 자기는 똑같은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19살 되던 때 오리건주클라 마스 폴스 근처 자연보호시민단체용 캠프에서 가지는 모임에서 사도의 신앙 교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거기서 주님으로부터 구속받는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산다는 간증을 듣고 자기가 찾던 그 실체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1938 7월 그는 오리건주포틀랜드의캠프 집회에 초대를 받았는데 어느 주일 집회에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주셨다. 대예배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셨다.
     그 다음날 집회 장소를 떠날 때 그를 초대했던 사람이 그를 어떻게 격려해 주었는지에 대해 종종 이야기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이 당신에게 행하신 일을 지키고 증명해 보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정말로 그대로 하겠노라고 하나님 앞에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날로부터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말입니다. 그는 옛 종교 안에서 즐거워했다. 그의 사명은 자기를 변화시키고 평화를 주신 분을 섬기는 일이었다.
     카버 목사는 더 깊은 영적 체험인 성결과 성령세례를 받았다. 그 후 몇 년 후 그는 목회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고 그의 첫 설교는 오리건주 메드포드 교회의 청년 집회에서 하게 되었다. 그 후 5년이 못된 1940년 주님은 그에게 그리스도인 된 아내를 신앙의 반려자로 주셨다. 그는 오리건주 달라스에서 첫 목회를 하였다. 1959년 사도의 신앙 교회의 집행기구인 이사회의 이사가 되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주 로스 앤젤리스와 오리건주 메드포드를 전전하며 목회를 하였다. 1965년에는 포틀랜드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레이먼드 크라포드 총감독이 작고함에 따라 사도의 신앙 교회 감독권을 이양 받으라는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구원받은 지 50년 되는 날 인터뷰에서 그는 그 역사적인 날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레이 형제님은 나에게 영적 아버지이면서 진실한 친구였습니다. 내가 포틀랜드로부터 전화로 레이 형제님이 오늘 아침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감당키 어려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최고의 친구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다음 날 이사회가 열렸는데 레이 형제가 죽기 몇 달 전에 쓴 유서장을 뜯어보았습니다. 그 유 서장에는 나를 총감독으로 추천한다는 내용이 쓰여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생길 줄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육체적으로 심히 약하기 때문에 사양했습니다. 무서운 책임감이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교회의 즉 분자들과 성도들이 만장일치로 레이 형제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충격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결코 그런 일이 네게 일어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카버 목사는 1965 6 4일 주님을 위한 더 큰 봉사의 직분을 맡게 된 것이었다. 그가 총감독으로 있는 동안 사도의 신앙 교회의 사역은 계속 전 세계로 펴져 나갔다.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 서신들이 쇄도하였고 아프리카 지역에 새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지역의 사역이 확장되면서 현재를 기준할 때 650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미국 전역 이곳저곳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사역도 시작되었고 일본과 필리핀, 뉴펀들랜드, 도미니카 공화국 버질 아일랜드와 자메이카에 교회가 헌당되었다.
카버 목사는 포트랜드에 선교본부 사무실과 인쇄소 공사를 감독하였다. 이곳에서는 수백만의 전도지가 인쇄되어 세계 도처로 무료 공급하였다. 1979 7 20일 기공식을 하여 1년도 못된 1980 5 19일에 이전하였다.

1993 7월 캠프 집회기간 중에 카버 목사는 기도한 후 이사회에서 총감독직을 이양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했다. 그는 오리건주 메드포드 교회의 담임목사인 드와이트 볼첼 목사를 총감독 후계자로 추천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앞서간 성도들이 내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자주 말한 것들을 나는 참고하였고 그들의 조언은 내게 유익하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로 나는 복을 받았습니다. ... 이제는 책임을 양도하고 이 복음사역이 새로운 지도자하에서 진전되어야 할 때입니다."라고 했다. 다시 한번 총회를 가지고 전 성도들과 전 세계 지도자들의 찬성을 통해 그의 제안은 지지를 얻었다.

카버 목사는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선교본부 사무실에서 활동적으로 일을 하였다. 그는 정기적으로 사무실에 나와 서 신 회답하는 일, 상담하는 일, 그리고 새 총감독이 되어 일하고 있는 볼첼 목사를 기도로서 지원하는 일을 하였다.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그렇게 하였다. 매년 열리는 춘계 특별집회 때면 웨스트 코스트 여러 지역의 사역자들이 교대로 그의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 주었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어 주었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생애를 통해 천국이 얼마나 가까운 가를 느꼈다고 말했다.

카버 목사의 장례식은 3 15일 금요일이었다. 비록 상실의 아픔이 있었지만 승리의 분위기였다. 성가대가 잘 알려진 찬송인 "예수 안에서의 승리"를 불러 줌으로 참석자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다. 볼첼목사와카버 목사의 사위가 함께 나란히 단상에 앉았는데 회고담을 말할 때 사랑하는 카버 목사가 얼마나 영감 있는 분이었는가를 말했다. "마침내 본향"이라는 성가대의 찬송으로 장례식은 끝났다. 이 찬송의 가사로 그려진 그 장례식의 장면은 상상만 해도 감격적이었다.
"해변에 나가 서 있는데 그곳이 천국이었다고 생각해 보라. 손에 닿을 듯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 새로운 공기를 마시는 곳, 하늘나라! 영광 중에 깨어보니 그곳이 내 본향일세.

장례식에는 뉴펀들랜드, 한국, 일본, 영국을 포함하여 세계 곳곳으로부터 온 대표자들로 가득하였다. 상실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조문들이 세계 곳곳에서 왔는데 장례식 중에 낭독되었다.  

     장례 일은 파란 하늘과 따뜻하고 청명한 봄날 오후에 있었는데 카버 목사와 함께 수고하였던 목사 12명이 장례위원으로 그의 시신을 최후의 안식처로 운구하였다. "부름받고 택함 받아 충성한 자"라는 비명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의 모범적인 삶에 대한 적절한 묘사이다. 그는 이 땅의 여정을 승리로 마치고 개선장군처럼 천국 문을 통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된 의의 면류관을 이제 받은 것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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